로코
2024년 11월 23일

초록초록 고대 원시림, 야쿠시마

발행일 2024년 11월 23일  •  4 분 소요  • 683 단어  • 다른 언어 선택:  Eng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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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시마로 가는 길

여행 첫 날에는 아침 비행기를 타고 후쿠오카에 도착해서 실물 JR 패스를 교환받고, 후쿠오카에서 하루 머물렀다.
JR 패스를 여행 2일차에 개시해서 패스를 최대한 더 많이 이용하려는 속셈이었다.
그래서 사실 여행 1일차는 바로 야쿠시마로 떠나는 일정이 아닌, 후쿠오카 맛보기가 되었다.

하카타 역

낮에는 간단하게 하카타 역에서 소박한 쇼핑을 했고, 저녁에는 캐널시티와 나카스를 돌아다니며 후쿠오카의 야경을 즐겼다.

나카스

이튿날에는 신칸센을 타고 우선 가고시마를 향해 달렸다.

가고시마 중앙역

가고시마 중앙역에 도착한 이후, 우선 트래블 센터에 방문해서 페리 선착장으로 가는 방법을 물어보았다.
트래블 센터에서는 페리 선착장 근처까지 가는 트램을 추천해줬지만 나는 페리 선착장의 위치만 확인하고나서 조금 여유롭게 걸어가기로 했다.

가고시마 패리 선착장으로 걸어가는 길

이런 로컬 분위기의 거리를 걷다보니 그제서야 ‘진짜로 일본 여행이 시작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패리 선착장

1시간 가까이 걸어서 페리 선착장에 도착했고, 2만엔 가량을 지불해서 야쿠시마 왕복 티켓을 구매했다.
배편도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왔던 터라 이런저런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어찌 되었든 내가 선정한 첫번째 일본 여행지, 야쿠시마를 향해 출발할 수 있었다.

일본인데 일본이 아닌 것 같은 섬

야쿠시마 선착장

야쿠시마의 첫인상은 일본 초행인 내가 보기에도 본토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가진 섬이었다.
1년 중 366일 비가 내린다는 소문처럼, 내가 섬에 도착하던 날에도 어딘가 우중충한 분위기가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푸른 해안가와 구름에 가려 끝이 보이지 않는 산, 그리고 그 사이에 들어선 소박한 마을들.
이러한 정경을 뒤로 하며, 버스를 타고 숙소로 이동했다.

토마리기 가는 길

게스트하우스 ‘토마리기’는 야쿠시마 여행을 검색할 때 가장 많이 나오는 숙소였기 때문에 나도 호기심이 생겨서 하루 머물러 보기로 했다.

토마리기

호텔 대신 게스트하우스를 선택할 때 가장 기대할 만한 것은 역시 ‘정감 있는 분위기’일 것이다.
토마리기는 해당 요소를 완벽하게 갖추고 있는 곳이었다.
낚시한 물고기들을 직접 그린 듯한 그림들, 무수히 많은 만화책들, 여행 안내지들과 게스트들이 남긴 사진들, 이런 것들이 모여서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토마리기의 주인 네상으로부터 시설들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호주에서 온 Bow라는 친구가 저녁을 먹으러 차를 타고 나갈건데 같이 갈거냐고 물어봐서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따라갔다.
오후에 야쿠시마의 마을들을 둘러보려고 했지만 버스가 1시간 간격으로 있어서 막막했기 때문이다. Bow와 함께 야쿠시마의 마켓들을 둘러보고, 동네 여기저기를 산책하고, 스시를 먹었다.
교통편이 매끄럽지도 않은 곳에서 편하게 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여유로운 바이브가 느껴지는 호주 친구와 도란도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모노노케히메의 원천, 시라타니운스이쿄를 향해 떠났다.

토마리기를 지키는 고양이 신

토마리기의 정겨운 분위기, 예쁜 오드아이를 가진 하얀 고양이와는 작별이었다.

토마리기의 문

원령공주의 숲

시라타니운스이쿄 도입부

기대했던대로 시라타니운스이쿄는 온통 초록빛의 울창한 숲과 시원한 물줄기 소리로 나를 맞이해주었다.

어딜 가도, 어딜 봐도 초록색의 대자연이 눈앞에 펼쳐졌다.
돌에도, 쓰러져 있는 나무에도 초록색 이끼가 뒤덮여 있는 것을 보니 정말로 모노노케히메의 숲 속에 들어와 있다는 것이 실감되었다.

시라타니운스이쿄 시라타니운스이쿄 이끼 덮인 돌

저 위에, 모노노케히메에 등장하는 코다마들이 앉아있었다면 딱이었을텐데···.

시라타니운스이쿄 나무 밑동

시라타니운스이쿄의 정상까지 오르는 트레킹 코스는 4시간에서 5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한국에서도 그 정도의 등산은 충분히 해봤기 때문에 코스의 길이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여기는 흙이나 돌이 아닌, 이끼가 잔뜩 뒤덮인 길을 걸어 가야했기 때문에 미끄러움에 특히나 주의를 기울여야 했고, 이 때문에 체력이 꽤 소모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 문제는, 하산할 때에 모종의 이유로 더욱 크게 불거져서 나타났다.

정상에서 탁 트인 전망을 한 20여 분 정도 마음껏 감상한 뒤에 가뿐한 마음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난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줄기차고 억센 장대비가.
다행히 미리 준비해둔 우의가 있어서 온몸이 쫄딱 젖는 불상사만큼은 피했지만, 물을 촉촉히 머금은 발밑의 이끼는 한층 더 미끄러워져서 내 발을 훨씬 더 고단하게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뜻밖의 수확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비 내리는 울창한 원시림의 절경 이었다.

이 동영상을 끝으로 우의 속에 카메라를 감쳐두느라 더이상의 촬영은 무리였지만, 비가 내려 안개가 자욱하게 낀 원시림의 신비로운 분위기는 내 머릿 속에 강렬한 인상으로 깊이 남았다.

빈틈투성이 여행 계획

나는 MBTI에 과몰입하는 것을 싫어하지만, 스스로 계획을 세우는 것을 좋아하고, 이를 실천하는 행위에 대해 뿌듯함을 느끼기 때문에 꽤나 깊은 J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깨달았다.
나는 숲을 보는 듯한 거시적인 계획, 그리고 장기적인 계획만을 좋아한다는 것을.
나라는 사람은 뜬구름처럼 둥둥 떠 있는 막연한 계획들은 많이 세우면서, 그것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세우는 데에는 빈약하다는 사실을.
이번 일본 여행에 대해서도 전체적인 계획은 잘 세워놨지만 세부적인 계획이 부실했다.
그것을 이번 야쿠시마 여행에서 크게 절감했다.
야쿠시마 페리 왕복 티켓이나 야쿠시마 시내 교통편 등에 대해 충분히 알아보지 못한 채 여행을 떠났다.
돌이켜 보면 참 무모하고 과감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사실, 무대책으로 뛰어들었기 때문에 또 낭만이 있는 여행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야쿠시마 여행은 일본 여행 중에서도 뭐랄까, 소용돌이가 가득 치는 느낌의 여행지로 기억에 남았다.
힘들었지만 그만큼 재미 있었고, 그만큼 감동적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야쿠시마에 가고 싶다.
대신 그때는 렌트카를 타고, 더 많은 기간 동안, 그리고 되도록이면 친구와 함께 가보고 싶다.

가고시마로 돌아오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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